예수를 위한 행진 대열은 언제든지 있어왔다

‘기독교 옹호론자들’-그 근본적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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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Humphreys

 


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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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궤변과 말장난은 기독교 옹호론자들의 기본적 무기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이 취약하다는 점을 악용하여 즉석 구원과 그들의 뇌세포를의 편안함만을 갈구하는 (게으른) 일반대중을 착취한다.

 

 

 

 

 

예수를 찾아라!

거짓말장이 일까 아니면 미친사람일까 그도 아니면 신의 아들일까? ---기독교 옹호론자의 협잡질에의 도전
“예수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카드를 시도해 보시라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복수의 증인?

이런 주장은 전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복음서의 저자들은 많은 공통적인 원천적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탠트 Michael Grant (Jesus, p201)

 

 

 

 

“증거라고? 우리는 증거를 다발로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죽어서 장사지낸 후 다시 사신 것을 (두 눈으로) 보았던 500명의 증인들을 모두 소환하여 법정에 세워보자.

만일 이 500명의 증인들에게 반대질문 시간을 포함하여 다만 6분간의 증언을 허용한다 해도 장장 50시간 분의 직접적 증언이 된다는 사실을 당신은 깨달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500명 x6분/명 = 50 시간이라는 수학적 진실 뿐이다: 역자 주)

마술사 죠쉬 맥도웰이 그의 모자 안에서 또 다른 토끼를 꺼내고 있다.

 

찬탄을 자아내는-예수에 대한 추가적 증거, 곧 대령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의 일을 위해 약간의 ‘동그라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가 세쌍둥이였다고?!

만일 세 개의 빈 무덤이 있다면, 이것이 예수가 세명 있었다는 증거가 되나?

이거 좀 혼란스러운 일 아닐까요? 그렇겠죠!

1호 (혹은 이북식으로1번) 빈 무덤
2호 (2번) 빈 무덤
3호 (3번) 빈 무덤

 

 

 

 

 

 

 

레드넥(남부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로 보수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 역자 주) 들을 당혹케 하는 것들

주님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매일 출현하네

 

 

 

 

 

1990년, 예루살렘에서 고대 장지(葬地)의 동굴을 발굴했다. 그 동굴 방에서 발견된 뼈를 담은 상자는 이것이 한 때 콰파(Qafa,영어로는 Caiaphas)라는 가족들이 사용했었다는 심증을 보여주었다.

기뻐하고 또 기뻐하자!

‘콰파’(Caiaphas)는 성경속의 인물이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 무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재)를 증거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전화 번호부에서 ‘클락 켄트’라는 이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수퍼맨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예루살렘 지역에는 800개 정도의 비슷한 무덤들이 알려져 있다.-하지만 이런 것들로 혼동하지 마시라)

 

 

 

 

쟝크 후드, 쟝크 종교

다불 치즈버거 성경

가짜 과학을 장장 1100페이지나 밀어붙이다니! (종이가 아깝다: 역자 주)
 

 

 

 

 

 

쌍스러운 것에 대해 말한다–

“예수는 동시대인 그 누구보다도 문헌적 증거가 많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은 한마디도 믿지 말라.

Did Julius Caesar Exist?

줄리어스 씨저는 (역사적으로) 존재했을까?

 

 

 

Debunking fundamentalist arguments – point-by-point (off-site)

근본주의자들의 허위의 논리의 가면을 조목조목 벗긴다.(Off-site)

 

 

 

 

 

 

난폭한 동물들!

4세기의 (저자) 유세비우스(Eusebius)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다. 그리고 10세기의 코덱스 콜버티누스(Codex Colbertinus, 옛날 성경책인데 11혹은 12세기에 작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역자 주)에는 (이 순교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고도 자세히 각색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안티옥에 거주하고 있던 트라얀(Trajan)황제가 이 (이그나티우스) 감독을 로마로 보내 야생동물들에게 (먹이깜으로) 던져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트라얀은 114년부터 117년 까지 파티안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부에 있었고 안디옥의 법정은 황제의 지방 총독인 하드리안(Hadrian)이 관장하고 있었다. 그 동안 황제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알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를 통해서 진군하고 있었다.

안디옥은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의 하나였고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아주 근사한 원형투기장이 있었다.

Antioch 안디옥의 원형투기장(모자익. 안디옥 박물관)

순교가 있었다는 때 부터 4세기가 지난 5세기에 이그나티우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뼉따귀들이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에 의해서 로마에 있는 행운의 신전(Temple of Fortun)e에 안장되었다..

모두 재미로 하는 짓들이겠지…

 

 

 

 

 

 

 

 

동방박사?

멜치어?( Melchior마태복음에 나타나는 동방박사의 이름, 후세에 붙여진 이

벨싸사르?(Balthasar역시 동방박사의 한사람: 역자 주)

카스파(Caspar)?

 

 

 

 

 

 

 

 

 

 

 

 


 

그들은 얕은 꾀로 쉽게 속아넘어가는 순진한 사람들을 속인다.

소위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증거는 수 많은 페이지들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많다. 그 규모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종교 산업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사자같은 신앙의 방어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중 두명을 꼽는다면 “그리스도의 경우(The Case For Christ)” 의 저자이며 소위 ‘거듭났다’ 는 리 스트로벨(Lee Strobel)목사이고 다른 하나는 “평결이 요구되는 증거(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의 저자인 죠쉬 맥도웰 목사다. 이 두 사람 모두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낮짝이 두꺼워서 일까?: 역자 주) 자신들이 과학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척 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콧대 높은 자칭 객관성을 초월하여 그들은 그들의 선교운동을 위해 공공연히 편파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감사해 마지 않는 기독교 주식회사 들로부터 그들을 향해 쌓이고 있는 과도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말하는 소위 ‘증거’라는 것들은 (약간의)음미 아래에서도 함몰된다. 궤변과 엉터리 속임수는 단지 잘 속아넘어가는 무식한 사람들이나 속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종교의 정수다.
(“거듭났다”가 나오는 성경 귀절은 예수님의 발언이 아닐 수밖에 없다는 증거가 있다:역자 주)

이 기독교 옹호론자들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예수의 소장품이나 예수의 비밀스러운 회고록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성물(聖物) 날조 업자 들과 같은 약삭빠른 동업자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현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그 보다도 이들의 써커스 텐트 안에는 핑계와 의심스러운 논리 이상의 실속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을 함께 묶어놓고 있는 것은 소위 ‘신앙’이라 불리는 만능 접착제이다.

맑은 정신상태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이것들이 기독교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것들일 것이라는 결론만 낼 수 없었더라도, 엉터리 수작과 어릿광대 같은 소란함의 행렬은 흥겹게 웃어넘겨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늘이여, 그들이 행여라도 정부를 접수 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중세) 암흑기의 전주곡으로 초기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희랍 철학자들과 이와 비슷한 가(假)-이성적인 논쟁을 벌렸었다. 희랍 철학자들은 처음에는 기독교도들을 무시했지만 그 후에는 기독교도들을 바보로 비아냥 거리고 말았다. 그러나 3세대도 지나지 않아 기독교 광신자들은 로마 제국을 접수하고 이 (비)웃음은 멈춰졌다.

 

1. “성경에 그렀게 쓰여 있다”는 식의 논리

믿거나 말거나, 너무도 논리적인 사고를 벗어나 턱이 절로 떨어질 대표적 사례는 옹호로자들이 그들의 이야기 책 속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웅의 ‘역사적 실존’을 증거하는 주된 증거 자료로 바로 그 이야기 책 자체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그 자체를 증거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허위의 언어로서 성경은 “유일”하며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모두 진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참 편리하다.(사실을 말한다면, (이 논리가) 너무도 편리하여 모하메드도 그의 코란에서 같은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경속에 정확한 연대와 (그 존재의) 증명이 가능한 인물, 장소, 사건에 대한 기술이 주어져 있다는 이유로 이 궤변을 다소나마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그 다른 어떤 허구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일련의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들과, 과다한 등장 인물들과, 그 자세한 내막을 점검할 수 없는 대량의 소소한 사건들을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는 역사적 배경에 삽입해 넣고 있다.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아 땅은 물론 역사적 실체다. 또 1세기에 예루살렘은 분명히 존재했다. (당신은 그 유적들을 방문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역사소설이라도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다. 소설은 그 소재가 아무리 신빙성 있게 보인다해도 소설이기를 멈출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성스러운 목수가 실제로 물 위를 겈고, 죽은 자를 살려냈으며 정말로 부활하여 하늘로 올려졌는가? 하는 데에 있다.

성경적 반면(半面) 진리의 전체적 요약과, 환상적이며 제멋대로의 역사(?)를 ‘역사적 증거’로 정의한다면, 예수라는 수퍼영웅에 대한 대다수의 ‘증인’들은 바로 그런 범주에 예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라는 이야기책 속의 다른 증인들은 이 성스러운 목수의 실재를 증언하고 있다. 이는 마치 배트맨 만화책 속에 등장하는 경이로운 소년 ‘로빈’의 말로서 ‘배트맨’의 실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신인의 탄생? 우리에게는 목동과 천사들을 증인으로 세운 누가의 증언이 있다(누가 복음 2장) 누가가 이 신인이 탄생했을 시기부터 적어도 60년이 지난 후에 (그의 복음을) 썼다는 사실은 상관할 바 없이, 누가는 증인으로 나서서 (60년도 넘은 과거에) 목초지에서 야밤중에 있었던 대화를 한마디도 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했던)말 그대로를 증언하고 있다.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왜 우리는 여기서 동료 이야기꾼 누가 보다 더욱 오래 기다린 끝에 그 사건의 기록을 남긴 사도 요한을 우리의 주요(정말로 유일한) 증인으로 삼아야 하나? 누가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고작해야 소문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고 그 사건이 있은 후 한 세대 이후에 (그 이야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메시아 (연극의) 대단원, 즉 부활의 보증인으로서 우리는 누구를 소환해야할까?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성명미상의 500여 ‘형제’들과 12 사도와 자신의 목격담을 언급한 바울의 증언(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나온다. 마태는그 대신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드린 두 여인과 산(山)자락에서 예수를 배알한11명의 사도들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가는 세 명의 여인들(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과 두명의 길가는 나그네와 점심을 먹고있던 11명의 제자들을 증인으로 내 세우고 있다 (마가 복음 16장) 마지막으로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 그리고 특별히 의심 많은 도마를 증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요한 복음 20장)

기독교라는 이 총체적으로 심술궂은 교리체계의 핵심적 믿음은-부활한 구원자-인데 이는 고대의 언어로 작성되었으며, 체계가 서 있지 않으며, 철저히 의심스러운 책에 500단어가 될까 말까한 기록으로 얹혀있다.

아마도 이쯤에서 보면, (우리가) 가정(했어야 할 것)은 모든 비판적 사고는 중지했어야 하고 이 계시된 진리에 대해 한시라도 의심을 품은 데에 대한 참회로 또 다른 복사(服事, 미사때 신부의 조 노릇 하는 사람)가 그의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2.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증거”라는 논리

이야기 책 그 자체에서 따 내온 등장인물들을 증인으로 집합시켜 놓은 후에도 이 의심스러운 ‘논리’는 계속해서 ‘형제’로 등급이 매겨진 한 덩어리의 추가적인 증인들을 내 놓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실상 몇 안되는 고립된 개인들일 뿐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들을 ‘증거’로 내 놓고 있다. 따라서 안티옥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bishop of Antioch (50-115?))와 같은 교부들이 기록해 놓은 신앙관은 세계 지배권을 당연한 권리로 요구한 로만 캐톨릭의 ‘이정표’가 되었다. 인상 깊도록 재미있는 순교의 이야기와 명사로서의 유람여행에서 이 수퍼스타 감독은 비열한 트라얀 황제(Trajan,사실상 이 황제는 자비로운 황제로 매우 유명하다)로부터 야생동물에 잡아 먹히는 형에 처해졌다.

우리는 지금 로마의 모든 가용자원이 파르티아(Parthia)와의 전쟁을 위해 집중되고 있던 시점에서 로마 황제가 이그나티우스의 형 집행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지방 경기장에서 집행하도록 하지 않고 그 대신 군대를 동원하여 이 포로를 제국의 동쪽을 돌아서 로마까지 압송 시켰다는 주장을 믿으라고 요청 받고 있다. 이 장기간의 여행은 이그나티우스에게 가는 곳마다 기독교계의 명사들을 만나 접대를 받을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 여정에서 이그나티우스는(그는 자신의 순교를 상당히 강하게 고집하였다) 참으로 기적적으로 보이는 15편의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의 수신자들 중에는 처녀(성모) 마리아와 이나나티우스가 죽은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감독들, 등등 다양한 명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의 중요성은 역사적 정확성이 아닌 케톨릭 교리에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2세기의 환상적인 개종이야기로 그 연대가 소급하여 잡힌 후 4세기 때 정통파의 대변인으로 탈바꿈 되었다. 이 정중한 감독은 형제들에게 모든 종류의 “이단”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그들이 속한 감독에게 절대 복종을 강조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사도들 자신들에 의하여 비숍이 되었고 그 자신 스미르나의 비숍 폴리카르프(Polycarp of Smyrna (died 166?))를 지도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의 ‘연출무대’와 현실적 캐톨릭 감독의 권위 간의 ‘잊혀진 연결고리’를 연결해 낸다. 자신을 안티옥의 비숍으로 자천한 이 최초의 카톨릭 성직자는 이 일을 폴리카르프와 서신을 통하여 이루어 냈다.

이와 비슷하게, (이그나티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풀라비우스 클레멘트(Flavius Clements (?150-216) bishop of Alexandria)와, 저스틴 (이 사람은 얼마나 갸륵한 ‘순교자’였는지 ‘순교자’가 그의 이름의 일부가 되었다) 이나 골(Gaul)의 감독 이레나이우스(Gallic bishop Irenaeus)가 마치 그들의 믿음이 자신들의 시대보다 한세기 전 혹은 그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와 죽음을 증거하는데 무슨 특별한 명제라도 되는 듯이 선택적으로 (그들을) 인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믿음의 증거는 현실의 증거가 아니다-만일 이런 식의 논리가 성립한다면 3000년 이상을 지속해 오던 에집트나 인도의 신들과, 거의 비슷한 기간을 지속했던 희랍이나 북 유럽지방의 신들 부터 그 정당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속임수는 2세기에서 조차도 (그 역사적 실존이) 의문시되고 있던 신인(神人)에 대한 교인 전문가들의 증언을 공개진열함으로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비 교인 전문가로부터의 증언은 물론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믿음의 증거 –에집트 사콰라 (Saqqara) 에 있는 백색 따오기(에집트의 신령한 새)의 무덤들

미이라가 된 수백만 마리의 새가 수 세기에 걸친 고대 에집트 인들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다. 이 제물들은 궁정 건축가인 임호텝(Imhotep)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는 희랍의 의신(醫神) 아셀로피우스(Asclepius)와 마찬가지로 신으로 추앙되었다.

추측컨대 이것은 아셀로 피우스도 실재햇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3. “고난 받은 제자들”이라는 논리

이것은 상당히 다른 이야기다. 우리의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비 기독교인들도 또한 (그들만의)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번에는 승리에 찬 교회가 고안해 내고 헐리우드가 영속시키고 있는 궤변을 부풀리고 있다. “제자들이 과연 날조된 구원자를 위하여 고난받고 죽을까?” (돌팔매질 당하고, 목이 잘려나가며, 야만스런 짐승같은 것들의 적나나한 장면들).

이 대담하지만 허튼 수작은 두 별개의 현실 앞에서 철저히 분쇄된다:

1.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일은 다반사이다.
9/11 테러리스트가 이슬람 천당으로 직행했을까?
많은 이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의 손에서 죽어나갔다. 이것이 아이시스(Isis)신과 디어니서스(Dionysus) 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나?

 

2. 사도들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existence of the Apostles )증거뿐 아니라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 suffering by Christians)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는 증거 모두 전혀 없다. ‘박해’는 ‘기독교 제국’이 그들의 만행을 ‘이단’들에게 돌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단 한사람의 사도에 대한 사형집행에 대하여도 언급한 적이 없다. 물론 이 사실이 네로황제가 기독교도들을 불태워 죽였다는자주 되풀이 되는 허풍스러운 이야기의 효과를 감소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잊지말고 (기억하자). 1209년 어느날 하루에 남부 불란서 Languedoc지역의 Beziers라는 곳에서, 기독교 박해자로 악명 높던Diocletian 황제의 20년 치하에서 죽은 기독교도들 보다 더 많은 기독교도들이 같은 기독교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이교도들이 아닌 기독교도들의 야만성을 적나나하게 들어낸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종교를 이유로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종교에 의해 고취된 죽음과 살인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4. 전설로 굳어지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논리.

이 논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덜 드라마틱한 역사적 진실을 덮고 전설이 개발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말한다: ‘신화’가 개발되는 데는 적어도 수 세대가 걸린다고. (정말 그럴까? 미 육군과 매스미디어가 교묘한 책략으로 제시카 린치 일병을 가짜 여자 램보로 둔갑시키는 데는 단지 수일이 걸렸을 뿐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사건 직후 린치 일병 자신이 보여준 솔직함으로 이 위조된 영웅담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들은 주장한다: (만일) 저자들이 이야기들을 틀리게 기록하고 있었다면 당시 살아있던 증인들이 틀렸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라고. 이런 주장은 상상력은 풍부할지 모르지만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이는 마치 당시 로마제국 동부의 유태인 거주지역이나 필사실(筆寫室)에 일단의 검열관들이 파견되어 랍비들의 저술활동을 검열했던 일이라도 있는 듯한 시사를 한다. 이 논리 속에는 복음서들이 상당히 일찍 쓰여졌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은근히 끼어들고 있지만 사실은 이 복음서들은 2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이 때쯤에는 1세기 전반의 모든 ‘증인’들이 이미 죽은지 오래된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암암리에 주장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10년 혹은 20년 이내에 많은 수의 기독교도들이 대체로 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확실히” 이런 현상은 “어떤 정말 주목할 만한 어떤 일이 있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는 식으로 논리는 전개된다.

(이는 물론) 틀린 생각이다.

먼저 우리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영웅이 십자가에 처형 당한 특정한 날자를 가정하고 기독교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까지의 날자를 세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적인 신인(神人)에 대한 신앙이 1세기 후반 내지는 2세기 초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전통은 여러 세대를 거쳐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유대인들이 진정으로 당한 고통과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추방으로 부터 야기된 이 전통의 출현은 매우 매혹적인 연구대상이다.

(그렇지만) 이 역사의 전개속에 임의적인 ‘역사의 창’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 가공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삽입한 행위는 기만일 뿐이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진실’ 추구의 경합자들
인간 예수를 믿지 않은 기독교도들:

도세티스트(Docetists): "사람의 환영 ..."

발렌티니안(Valentinians): "무식으로부터의 부활 ..."

마시온(Marcionites): "2 신(神)들, 예수는 전자파 방사로 강림했다..."

마니(Manicheans): "영혼은 함정에 빠뜨릴 수 없다…."

인간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그의 신격은 믿지 않은 기독교인들:

바실리디안(Basilidians):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지 않았다”…

에비오나이트(Ebionites): “유대인들은 예수를, 이단들은 바울을…”

놀라운 것은 너무도 많은 종류의 기독교 교파가 초창기 부터 번성했다는 사실과 이들이 인간 예수를 믿거나 부활한 예수를 믿는 등 공통적인 신앙관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신앙관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 예수의 실존의 증거는 확인 되었다거나 아니면 초기 기독교도들간에 의견의 일치를 본 것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1세기와 4세기 사이의 많은 기독교도들이 피와 살을 가진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런 믿음은 그들의 신격에 대한 (그들만의) 특정한 해석에 모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인간 사회에서 살았던 예수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신성을 부인했다.-그런 주장은 어느 일신교에서나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완전한 인간, 완전한 신” 예수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이 신앙의 고백으로 공식화한 것은 251년 제1 안티옥 회의 이후였고 그 후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세계에 공포, 강제되었다.

공통적 신앙관의 핵심을 견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괴상한 범주의 의견을 포용하고 있었고 이 형형색색의 잡다한 신앙관은 국가와 교회로부터 비 정통적 신앙관에 대한 억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5. 너무나도 많은 문헌이 존재한다는 논리

이 논리는 정말 너무도 투박한 방망이에 불과하다.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흔히 이런식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시저의 골(Gallic) 전쟁에 대한 기록은 단 하나뿐인데다가 이것은 10세기의 기록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반면에 복음서는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6세기로부터 12세기에 걸쳐 기록된 원고가 20,000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역사적?)정확성을 증명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이 논리는 사람을 섬뜻하게 한다.-마치 수천번 반복된 거짓말이 하나의 진실을 앞지를 수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정말 의미심장한 점은, 다만 몇 조각 밖에는 남아있지 않는 원고 까지 포함시킨다고 해도, 이 사교집단이 로마 제국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기 전까지의 기간에 존재하고 있던 기독교 경전의 원고들은 매우 적은 숫자에 그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고대 지혜서와 학술서적의 대부분이 기독교도들에 의해서 분서(焚書)되었다. 수세기 동안 교회의 명령에 의해 잔존한 서적들은 따분한 성경적 공상물들 뿐이었다.

사정이 이런 데도 근래의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뻔뻔스럽게도 고전학에 대해 그 빈곤함을 비웃고 있다. 이는 마치 나치가 유대 문학의 빈약함을 한탄하는 격이다.

 

6. “당혹스러운 실수”라는 논리

현대의 학자들은 성경의 미개함과 터무니 없음을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노정시키고 있다. 1800년전의 복음서 저자들은 과학과 이성에 대해 총체적으로 무식했다. 그들은 먼 미래에 까지 그들의 경건한 환상을 나르기 위해 가져와야 할 기술과 통찰력을 그 어떤 형식으로나마 예상할 수 없었다.

과연, 비교적 최근까지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접근이) 거부되고 오직 성직자에게만 허용된 금지된 책이었다. 터무니 없는 것들의 막대한 일람표로부터 문맹의 농부들에게 라틴어로 선택적으로 읽어주는 상황에서 그 누가 (성경에 내재하는) 무수한 일관성의 결여와, 상호 모순과, 터무니 없음을 눈치챌 수 있었겠는가?

지금은 우리 모두 이런 사실 뿐 아니라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모든 사실에) 부끄럼을 느끼기 커녕,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이 재난을 그들의 이점으로 과감하게 전환하고 있다. “이 실수들은 명백히 근원적인 진리를 증거하고 있다. 만일 복음서 저자들이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실수 없이) 제대로 했을 것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복음서) 저자들은 당대의 사기꾼들이었다 -그들은 대다수 대중들이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든가, 인쇄기나 컴퓨터, 혹은 인터넷 같은 것들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7. “신빙성있는 역사가가 없었다”는 논리

“오케이”,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그들의 마지막 수단으로 말한다, “만일 당신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학계의 주류학자들이 예수의 신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삶과 죽음 그리고 내세를 설명하는 두루뭉실한 일반론자들인 종교산업 종사자들과는 다르게 학계에서 일하는 학자들은 갈수록 특화되고 있어 더 작은 분야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고 있다. 개인적인 출세와 직업적인 명성은 그들의 아주 좁은 전공 연구분야에서 아주 소소한 일보 전진을 달성함으로 부터 얻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전공분야를 넘어선 분야에 대한 논평을 하기를 꺼린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연구분야 내에서는 학자들이 성경의 터무니 없는 부분을 거부하고 이에 도전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미 우리는) 그들 중 상당 수를 이 글에 인용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연구 업적들이야말로) 예수의 신비를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력과 수백만에 달하는 순진한 교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교회를 공격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수천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는 학계 내부의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사렛 예수가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과거 200년 이상의 기간에 소수의 학자들로부터 확인되어 왔다.

신인(神人)의 진리가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는 주장에 대한 의심이 먼저 제기되었다- 속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성이 신앙심을 압도한 진보적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다. 불행히도 근본주의자들은 이 접근방법의 방향을 선회하도록 하여 신앙이 이성을 압도하도록 허용하였다.

 

 

 

부활한 예수를 믿는데 가장 좋은 증거는 바로 이것이다

세 다리를 거쳐 구전(口傳)된 다섯개의 ‘보았다’는 일화들!

그리고 당신은 대량학살무기(WMD)에 대한 증거가 약간 빈약하다고 느낄것입니다…

복음서로 판단해 본다면 부활한 예수가 승천하기전 40일간 그의 활동사항은 다음과 같다: 아침식사 한번; 한번 반의 저녁식사; 묘지에서의 잠간동안의 만남 (실상 옷을 벗은채로); 시골길을 따라서 한 두 번의 산책; 그리고 적어도 일곱번의 대화…

I약 6주간의 기간에 걸쳐 전개되는 이 성경속의 이야기들은 예수가 나타났다는 장소와 그 회수, 이런 경우에 같이 있던 사람들에 관하여 뿐만 아니라 예수가 승천한 장소와 시간에 대하여 까지도 터무니 없도록 서로 모순된다.
– 쉬한
(The First Coming, p95,7)

 

1 Corinthians 15

고린도 전서 15장 (5절-8절)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John 20

요한 복음 20장 (14절, 19절, 26절)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Luke 24
누가복음 24장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5, 16절)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28절, 29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들어 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떼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가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30절,31절)…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6절, 37절)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40절, 41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42절, 43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50, 51)
MATTHEW 28
마태복음 28장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 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8절, 9절)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16절-18절.
MARK 16`

마가복음 16장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9절, 10절)…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 일러라.(12절-14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19절)

 

“죽을 운명이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만일 (사람들이) 복음서에 기술된 환상적인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을 제외하고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부활에 대한 견해가 믿을 수 없고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면, 예수의 부활의 진리와 그 확실성에 의존하고 있는 기독교는 역시 믿을 수 없게 된다.

– 스퐁 감독 Bishop John Shelby Spong (Resurrection: Myth or Reality? A Bishop's Search for the Origins of Christianity, 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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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C.S. Lewis, Mere Christianity (Fontana, 1955)
C.S. Lewis, The Screwtape Letters (Fontana, 1955)
Josh McDowell,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Nelson, 1999)
Gary Habermas, The Verdict of History (Monarch, 1990)
Lee Strobel, The Case For Christ (Zondervan 1998)
Lee Strobel, The Case for Faith (Zondervan 2000)
M. Marty, R. Scott Appleby, The Glory & The Power (Beacon, 1992)
Philip Sampson, Six Modern Myths Challenging Christian Faith (IVP, 2000)
The Apostolic Fathers, Early Christian Writings (Penguin, 1968)
Gore Vidal, Armageddon? Essays 1983-1987 (Andre Deutsch,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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