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족보는 6일에 걸친 신의 창조과정과 대 홍수 이후의 노아의 후손들과 아브라함과 그 가계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간에 필요한 연결 고리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 성스러운 이야기는 출애급기와 여호수아, 사사기를 거쳐서 다윗왕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유사 이전의 가짜 역사다.
그 이후의 덜 전설적인 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족보는 그 중요성을 게속해서 유지한다. 귀족 출신의 선대 조상들을 가졌다는 주장은 지배자들의 위치를 강화시켜 주고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잘 알려진 옛날 조상들의 후손으로 소문난 자들은 그들의 성직이나 제왕의 권위를 합법화 하며 막대한 빈부의 차이를 정당화 시키고 정치적 위치나 성전에서 성직계급을 할당 받는 기초가 된다.
유대인들도 혈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른 민족들과) 다르지 않았다. 희랍인들이나 로마인들도 (자신들을) 영웅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신을 조상으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귀족 가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쥴리우스 씨저(Julius Caesar) 같은 사람은 자신을 뷔너스(Venus) 여신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대인 귀족 성직자들은 무엇보다도 신으로 부터 선택받은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였다. 그들에게는 선민의 혈통을 외래 종자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여 지켜내는 일이 종교적 의무였다. 그리고 이 외래 종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단지 수 마일 밖에 살고 있었다. 신명기 (23장 3절)에 의하면 –사해의 동쪽 연안에 살던- 모압족속은 이스라엘 공동사회로부터 제외되어야 했다. 이들은 10세대(世代)가 지나도 이스라엘의 일원이 될 수 없었는데 이 규칙을 준수하게 된면 모압여인 룻의 증손자인 다윗왕 조차도 제외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세속적, 혹은 성직의 엘리트들이 그들의 족보 두루말이를 방심하는 일 없이 지켜내고 적절히 편집하여 작성했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가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문맹(文盲)인 농부들이나 장인들, 특히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족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다고 가정해도, 수세대 전의 조상들을 기억해 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 별볼일 없는 갈릴리의 목수가 최초의 인류로부터 추적되어 내려온 자신의 족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3500년 묵은 족보를 가진 별 볼일 없는 목수?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할아버지들은 모두 수세기를 살았다. 이들 대부분이 900년 이상을 살았다! 집단적으로 이들 전설적 피조물들은 대홍수 이전의 1,500년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들은 매우 장수하여 아담과 그 후대의 8세대(世代)가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시대에 이르기 까지 동시에 살고 있었다.
이 결코 능가할 수 없는 허무맹랑함이, 적어도 세상에서 누가로 알려진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 족보의 첫 부분이다. 물론 예수는 (아버지란 말의) 정상적인 의미에서 인간 아버지가 없다. 유대인 신 자신이, 성령이 성스러운 정자의 역할을 함으로서, 예수의 아버지로 지목된다. 우리는 누가복음의 기록으로부터 이 것을 안다. 누가복음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누가복음 1장 31절-35절)
신을 부모로 가지는 것 - 고대 신화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 은 대단한 영예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이 갈릴리에 살았던 목수의 경우에는 제2의 최상급 조상이 추가로 역설된다. 예수는 또한 다윗 왕가 – 전설적 왕조로 세워졌다가 잊혀진, 그 존재를 유대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왕조-의 후손으로 보인다.
이 전도꾼이 그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쓰기 전에는 어떤 시대였나? 누가는 그의 선배들의 작품을 기초로 그의 이야기를 전개해 갔다.
마가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첫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사람의 아들 혹은 신의 아들이라는 일반적 용어를 넘어선- 예수의 족보는 없다. 마가는 예수의 아버지의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는다. 마가에게는 예수가 세례를 통해 신의 양자가 된 의로운 사람일 뿐이다. 예수의 인간적 조상은 마가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예수의 가족은 방기되었다.(마가복음 3장 31절-35절)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마가 10장 46절-48절)이란 말로 예수에게 청원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마가는 예수가 시편 110편(“여호아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을 인용하는 장면을 포함시킴으로서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명제를 분명하게 거부한다. 예수는 선조가 동시에 후손이 될 수 없다는 간단한 논리를 지적한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마가복음(12장 35절-37절)
마가복음의 예수는 사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부인한다. 이 생각은 다윗의 후손이 아닌 하스모니안(Hasmoneans) 왕조가 왕권을 계승하게 됨으로서 명백히 그 근거를 잃게되었다. 예수의 수사학적인 망설임은 곧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긴 옷을 좋아하며” , 특권을 누리며, 그리고 과부들의 집을 탐내는 것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러서도 예수는 왕권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하기를 꺼려한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그리 말했도다” (한역판에는 “네가 옳도다”로 되어 있다: 역자주) 마가복음(15장 2절)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곧 도래할 신의 왕국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면서도 자신을 왕으로 지칭한 적이 결코 없다. 이 미래의 왕권을 빌미로 한 예수를 향한 규탄은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빌라도, 로마병정, 십자가에 달려있던 범법자).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야 – 혹은 이 문제에서 어떤 다른 선조를 들먹이는 일은- 이 원본 복음서의 한 요소가 아니었다. 이는 후세의 세련화 과정에서 덧붙여졌다.
마태는 예수를 진정한 유대인으로 만든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
역대 상 |
마태복음 |
1. 아브라함
2. 이삭
3. 이스라엘
4. 유다
5. 베레스
6. 헤스론
7. 람
8. 아미나답
9. 나손
10. 살마
11. 보아스
12. 오벳
13. 이새
14. 다윗 |
1. 아브라함
2. 이삭
3. 야곱
4. 유다
5. 베레스
6. 헤스론
7. (아람 ) 람
8. 아미나답
9. 나손
10. 살몬
11. (부스) 보아스
12. 오벳
13. 이새
14.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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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예수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선조들을 도입했고 이 필자는 일반적인 독자가 아닌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집필했다. 현자(동방박사:역자 주), 유아학살, 그리고 별, 등 예수 탄생이야기의 서언으로서 마태는 그의 예수를 유대의 족장과 연관짓기 위해 (그의 복음서를) 유대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예수의 혈통 관계 부터 시작한다.
마태는 서기 전 6세기, 페르샤의 분봉왕 스룹바벨까지 내려오는 “세대(世代)”에 대한 정보를 창세기와 역대(상, 하)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지만 분명히 그는 히브리 경전의 희랍어 번역판인 79인역을 사용했다. 파피아스(Papias)도 마찬가지고 소위 마태복음의 “아람어 원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태는 그의 영웅을, 이미 숭배받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 유명해진 ‘구루’가 아닌, “유대의 예언을 충족시킨” 존재로 소개하기로 작정한다. 마태가 복음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예수가 과연 다윗 왕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데에 있었다. 왕을 점지하는 것은 다윗의 경우 확실히 성령이 그에게 임했음과 그의 메시아됨(그는 신에 의해 점지 받았고 그래서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christos)가 되었다)을 상징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라…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하매…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여호아가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 상(16장 1절-13절)
마태복음의 원형에서 마태는 확실히 예수를 요셉이 마리아로부터 자연적으로 출산해서 얻은 아들로 설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설정은 확실히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로부터 호감적인 반응을 받았다. 적어도 초기 원고 중 하나에서는 아마도 원래의 어법이 보존되고 있다: “야곱은 처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복음 1장16절 Sinaitic Syriac Palimpsest). 여기서 그리스도란 직함은 상속권에 의해서 얻어진 것으로 상정되고 필자는 예수의 출생이전에 요셉을 다윗의 후손으로 취급한다.(마태복음 1장 20절)
무엇보다도, 만일 요셉이 예수의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면 요셉의 족보가 정확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의 혈통에 모든 족장들과 다윗왕을 포함하고 있는 신인(神人)이 양자가 됨으로서 형성된 제2의 혈통이 필요할까? 후세에 와서야 성령에 의한 잉태가 예수의 이야기속에 끼어들었고 요셉과의 혈통관계를 중복되도록 만들었다.
마태에게는 마리아가 아닌 요셉이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다. 적어도 네 번이 넘는 경우에서 요셉은 꿈속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는다. 예수의 탄생 자체는 거의 부차적이고, 이야기는 (천사로 부터의) 경고와 에집트로의 도주와 귀환, 등의 사건과 함께 빠르게 전개된다.
마법의 숫자를 가지고 놀다.
다윗으로부터 여호수아 까지 |
역대 상,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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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장 6절-16절) |
누가복음(3장 21절-31절 |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요람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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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윗
15. 솔로몬
16. 르호보암
17. 아비야
18. Asa 아사
19. 여호사밧
20. 요람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21.웃시야
22. 요담
23. 아하스
24. 히스기야
25. 므낫세
26. 아몬
27. 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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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다윗
36. 나단
37. 맛다다
38. 멘나
39. 멜레아
40. 엘리아김
41. 요남
42. 요셉
43. 유다
44. 시므온
45. 레위
46. 맛닷
47. 요림
48. 엘리에서
49. 예수
50. 에르
51. 엘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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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그가 작성한 예수의) 족보의 정확성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에 숫자에 관련된 종교적 상징성에 큰 관심을 기우렸다. 그는 왕들의 목록을 세개의 집합으로 나누고 각 집합에 14명의 왕들의 이름을 포함시켜 총 42세대가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했을까? 그 해답은 유대인들의 게마트리아(gematria: 일종의 숫자놀음: 역자 주)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윗왕의 이름(דוד)은 14가 (D = 4, V= 6, D= 4)되고 14자체는 영적으로 완전한 수인 7의 두배이다. 따라서 이 마법의 숫자의 렌즈를 통해서 보면 유대 역사의 짜임새 자체가 그리스도의 도래를 향해 가리키고 있음을 보일 수 있다.
첫번 집합에 포함된 14명의 왕들은 다윗왕 자신이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 마태는 역대(상)의 기록을 철저히 따랐다.
두 번째 집합의 14명의 왕들, -솔로몬을 통한 다윗왕의 계통-은 여고냐와 함께 저점(低点)에서 끝난다. 이 버림 받은 인물은 바벨론으로 망명하여 36년을 그 곳에서 지낸다. 그러나 그의 숫자의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태는 그 과정에서 수명의 왕들을 빼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9세기의 요람 왕부터 8세기의 웃시야 왕 사이에서 마태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왕들을 건너 뛰지 않으면 안되었다. 14명을 맞추어 놓은 다음 마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태복음 (1장 11절).
이것은 생략이다. 7세기 왕 요시야(639-609 BC)는 어린 아이로서 왕위에 올랐다. 멸망한 북쪽의 이스라엘로부터의 망명자들과 합세한 성직자들은 그들의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특별히 포용성이 없는 유일신 사상이 선포되고 예루살렘 성전의 야웨 사교집단이 모든 지방 성전들을 교체하였고 재 발명된 성스러운 역사(신명기)책이 “발견”되어 개혁과 북(이스라엘)으로의 (영토)확장을 정당화 하였다.
요시야 왕의 성직자들이 다윗왕의 계보를 발명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아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아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 열왕기 상(13장 2절)
이 전설의 요체는 신과의 계약과 어린 요시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 영구적인 다윗 왕조다. 그래서 나쁜 왕 여로보암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의 사람”으로부터 “다윗의 가계”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며 그가 사악한 다신교 숭배자들을 (불로) 구워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열왕기 상 13장) 이 다윗 왕의 혈통에 대한 원전(原典) 이야기에서 예언된 영웅은 바로 요시야 자신이다. 이 에피소드의 또 다른 주제에는 늙은 에언자에게 주는 “돌아갈 때는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신의 교시가 포함된다 -마치 “동방에서 온 현자”의 경우와 같이!
이 “다윗왕의 왕통”은 기억되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요시야 왕의 엘리트 궁정성직자의 발명품이다. 그 목적은 80년전 아시리아에 의해 점령당한 북쪽 땅(이스라엘)을 정복하겠다는 (남)유다의 야심을 정당화 하는데 있었다. 요시야가 실제로 자신의 계보를 이 전설적인 조상에 까지 이르는 수세기 간을 역추적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이 족보는 궁정 선전 자료다. 그러나 어차피 계보는 증명할 수 없겠지만 성경의 교의(敎義)이니,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행히도 신이 계약을 위반했다: 나이가 삼십이 되었을 때 요시야 왕은 에집트의 네초 2세(Necho II)에게 살해된다.
요시야의 맏아들은 요하나인데 3개월간을 통치했지만 곧 에집트의 파라오에 의해 폐위된다. 그 대신 에집트의 파라오는 그의 형제(동생?)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혔다. (‘열왕기 하’에 따르면) 그는 11년간을 통치했지만 바벨로니아가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전사했다. 여호야김의 아들이고 요시야의 손자인 여고냐는 도시를 내 주며 항복하고 망명길에 오른다. 그래서 마태는 역사를 간략하게 줄여버리면서 손자를 아들로 둔갑시킨다.
마태는 또한 요시야의 친아들이고 여고냐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삭제해 버린다. 이사람은 597년부터 587년까지 10년간 (남)유대를 통치했다. 바벨론의 과중한 세금에 반란을 이르킨 시드기야는 느브갓네살 의 2차 예루살렘 공격의 말미를 제공했고 도성과 성전은 파괴되었다. 느브갓네살 대왕의 면전에 잡혀온 시드기야는 자신의 면전에서 친아들이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고 눈이 뽑혀 장님이 된 다음 바벨론으로 압송된다.
이렇게 해서 유대 왕통은 끝났다. 신 조차 여고냐를 향한 저주로서 다윗 가계에 슬픔을 더해준다. (에…, 적어도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하면)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예레미야 (22장 30절)
이 모든일을 마태는 간단히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로 얼버무리고 만다.
요시아로 부터 스알디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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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상, 장
요시야
요하난 =Shallum
(3개월간)
여호야김 =Eliakim
(609-598)
여고냐=Jeconiah
여고냐
(망명전 3개월)
시드기야 (=Mattany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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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27. 요시야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28. 여고냐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는 스롭바벨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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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장)
51.엘마담
52. 고삼
53. 앗디
54. 멜기
55. 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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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알디엘 |
29. 스알디엘 |
56. 스알디엘 (Shealti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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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들 이후
마지막 집합에 있는 예수 족보의 14명의 이름은 가장 문제가 많다 – 그리고 이들이야 말로 “역사적 예수”의 고증에 가장 적절하다고 말할만 하다. 이 때는 500년의 전쟁과 정복의 기간이었고 유대 예언자들 조차도 수긍할 만한 연대기를 만들지 못했다.
마태는 다윗의 가계에 대한 흔적을 바벨론으로부터 찾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유대는 신흥 강대국 페르샤에 종속되어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마태의 정보원(情報源)은 서로 모순되고 있다. 에스라에 의하면 당시 “유다 목백 (왕자)”은 세스바살이었다.
“바사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 에스라 (1장 8절).
그러나 같은 사건을 기록한 학개 (1장1절)는 당시 유다의 총독을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로 기록하고 있다.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다른 이름인가? 에스라 5장은 이 사람들이 별개의 인물들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스바살 은 아마도 독립국으로서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여고냐의 아들인가? 역대에 따르면 사로 잡혀간 여고냐의 후손들은 “그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세낫살과, 여가먀와,호사마와,느다뱌”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문장에서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 아닌 그의 형제 브다야의 아들로 올라있다. (역대 상 3장 17절-18절)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윗 계보에 세가지 다른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여고냐, 그 다음 세스바살; 여고냐 ,스알디엘, 그 다음 스룹바벨; 여고냐, 브다야, 그리고 그 다음의 스룹바벨. 에스라는 이 밖에 네번째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필자는 망명으로부터 귀환한 가족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 나와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다윗 자손 중에는 핫두스요…” – 에스라 (8장 1절, 2절).
이 핫두스(느헤미야 10장 4절)는 총독 느헤미야와 “견고한 언약”에 서명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혹은 그의 후손들에 대하여 그 이후의 기록은 전무하다.
누가는 후에 또 다른 변칙을 추가한다: 스알디엘의 아버지는 여고냐가 아닌 알려지지 않은 네리란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태는 그의 성스러운 마스터 풀랜의 이해관계의 필요에 따라 이 모든 것들을 단순화 한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마태복음 (1장 12절).
그러나 갈수록 악화된다!
도대체 아버지가 누구냐?
스알디엘 부터 요셉까지 |
역대 상 3장 |
마태복음 1장 |
누가복음 3장 |
스알디엘
스룹바벨
무술람
하나냐
블라댜
여사야
르바야
아르난
오바댜
스가냐
느아랴
에료에네
역대기의 저자 (서기 전 4세기)에 의해쓰여진 다윗가계의 계보는 에료에네의 일곱아들들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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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스알디엘
30. 스룹바벨
31. 아비훗
32. 엘리아김
33. 아소르
34. 사독
35. 아킴
36. 엘리웃
37. 엘르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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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스알디엘
57. 스룹바벨
58. 레사
59. 요아난
60. 유다
61. 여셉
62. 서머인
63. 맛다디
64. 마앗
65. 낙개
66. 에슬리
67. 나훔
68. 아모스
69. 맛다디
70. 요셉
71. 안나
72. 멜기
73. 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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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맛단
39. 야곱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태복음 1장 16절
40. 요셉
41.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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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맛단
75. 헬리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 누가복음 (3장 23절)
76. 요셉
77.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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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의 아버지란 점에는 역대기 저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다음대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생각이 다르다.
“스룹바벨의 아들들은 므슬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 또 하수바와 오헬과 베레갸와 하사다와 유삽헤셋 다섯사람이요”
– 역대 상 (장19절,20절)
일곱 형제로부터 한사람을 선택하는 대신에 마태는 들어보지도 못한 아비훗을 스룹바벨의 아들로 목록에 올린다.(마태복음 1장 13절). 여기서 재미를 더하는 것은, 누가가 스룹바벨의 이들이 아비훗이 아닌 레사(누가복음 3장 27절)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점점 악화 일로에 들어가다!
이 이후 500년간의 기간에는 페르샤, 희랍, 톨레미, 셀루시드, 하스모니안, 헤롯, 로마들의 지배가 이어진다. 그러나 에스라와, 서기 전 5세기의 느헤미야를 제외하면 서기 전 2세기까지 “다윗가계”의 계보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반천년(半千年)간에 다윗왕가의 혈통이 아닌 마카비왕조와 헤롯왕조의 부침을 포함한 다수의 정권교체는 가히 천지개벽에 비견할 만하였다.
잦은 혁명으로 인하여 역사기록상에는 심각한 간격이 있게 된다. 성전 두루말이들은, 때때로 성전 그 자체까지도, 한 번 이상 파괴되었다. 명백히, 이런 사태는 전도자들로 하여금 “신으로부터의 영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래서 마태의 복음서에서는 스룹바벨로부터 시작하여 아비훗을 거쳐 요셉까지 내려오는 계보에서 일련의 알려지지않은 이름들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장기간 –특히 다수의 격변기가 교차했던 시기에-다만 14대의 세대는 비참할 정도로 충분치 않다. 이는 세기당 3세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태는 바벨론 망명기로부터 예수까지 14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필자는 기괴하게도 세대를 잘못 세었다. 그는 단지 13명의 이름만 목록에 올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태가 조작한 족보는 42세대가 아닌 41세대가 되었다.
마침내 우리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에 도착했다.
이 이후의 저자, 누가는, 마태의 노력이 이 성스러운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치 않았다고 판단하여 대대적인 개정에 착수한다.
Part 2 - The Genealogy of Luke's Gospel
Sources:
Eusebius Pamphilius, The History of the Church, c.324 AD (Digiread, 2005)
Keith Whitelam,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Routedge. 1997)
John Rogerson, Chronicle of the Old Testament Kings (Thames and Hudson,1999)
James Tabor, The Jesus Dynasty (HarperElement, 2006)
Robert Price, The Incredible Shrinking Son of Man (Prometheus, 2003)
Michael Grant, The History of Ancient Israel (Weidendfeld & Nicolson, 1996)
Genesis, Exodus, Samuel, Kings, Joshua, Ruth, Chron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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