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食傷)하도록 많은 예수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그 어디에도 없네


“내가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도다” (아가서 3장 1절)

Sources:
Paul Johnson, A History of the Jews (Phoenix Grant, 1987)
John P. Meier, A Marginal Jew -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Doubleday, 1991)
Josephus, The Jewish War (Penguin, 1959)
Leslie Houlden (Ed.), Judaism & Christianity (Routledge, 1988)
Riane Eisler, The Chalice & the Blade (Harper Collins, 1987)
Geza Vermes, The Changing Faces of Jesus (Allen Lane, 2000)
A. N. Wilson, Jesus (Harper Collins, 1993)
Ian Wilson, Jesus: the Evidence (Weidenfeld & Nicolson, 1984)
Alvar Ellegard, Jesus One Hundred Years Before Christ (Century, 1999)
Johannes Lehmann, The Jesus Report (Souvenir Press, 1972)


email the author –
Kenneth Humphreys

 


24.10.11

Home       Section      Complete list of articles            Site Search Search tips   

 

 

이름안에 무엇이 있나?

실질적으로 예수란 이름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예수란 이름은 그 기원이 יהושוע (Yehoshua or Joshua)에서 유래하는 데 여가서 그 첫 부분인 "yeho"는 신을 위미한다. 이는 야웨가 도운다 ("YHWH helps)는 뜻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매우 주의해서 썼어야 했다. 혹시라도 실수로 신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Yehoshua’ 는 축약되어 ישוע (Y'shua) 가 되었고, 혹은 갈릴리에서는 ‘Yesh’u가 되었다.

희랍어로 음역되는 과정에서’Yeshu’는 Ἰησοῦς (Iesous)가 되었고, 여기서 다시 라틴어의, ‘Iesus’가 나왔다. 그 후의 진화과정에서 대문자 ‘J’ 가 첫 대문자 ‘ ‘I를 대치하여 ‘ Iesus’ 는 ‘Jesu’s가 되었다.

 

 

 

인간의 창조물

복음서의 예수는 인간들의 창조물로서, 2세대에 걸친 기독교 신앙의 결합된 의식을 통하여 진화된 집단적 작품이다.

– 윌슨 (A. N. Wilson) (Paul, p144)

 

 

 
 

찾을 수 없는 증거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이 논의들 (문서로서 매우잘 정리되어 있다.)의 결과는 심히 의심스러운 기독교측의 전거(典據) 이외에 예수의 실존을 뒷바침할만한 증거가 그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없다는 점이다.

– Riane Eisler (The Chalice & the Blade, p122)

 
 
 

 

 

비기독교적 중언?

이 사람들은 서기 30년 이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요세프스(Josephus )– c37AD-c100AD;
타시터스(Tacitus )– c55AD - c117AD;
스웨토니우스(Suetonius) – c69AD - 140AD
 
 
 
 

 

 

크레스터스?

“기독교 옹호자들은 스웨토니우스(Suetonius)가 그의 저작 중에서 인용한 ‘크레스터스’(Chrestus)란 이름의 사람을 들어 이 사람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구원자’라고 주장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 당시 로마인으로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며 ‘크레스터스’(Chrestus) 혹은 ‘크레스토스’(Chrestos)는 ‘유용하다’는 의미로 자유를 얻은 노예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고 추측한다.
– Acharya S

 
 
 
 
 
 
 
 
 

한마디도 찾을 수 없다

“예수가 했다는 말씀 중에 유태 라바이가 이미 하지 않은 말은 한마디도 없다”

- Mark Tully (Lives of Jesus, p80)

 
 
 
 
 
 
 

고대에 존재했던 원형

잠깐 보기:

"Holy Family"
– in Luxor 1700 BC!

“성 가족(聖 家族)”
기원전 1700년 Luxor에서

 
 
 

 

 

 
 

Star Struck

지구가 자전을 함에 따라 별들은 지구 자전축상에 가까이 놓여 있는 별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북반구에서 이 자전축상에 가까이 있는 별은 북극성이다. 남반구에서 대체로 여기에 해당하는 별은Sigma Octantis이다).

따라서 극지방을 향하여 추적해 가지 않는 한 이들 메시아 사냥꾼들은 -그들이 지속할 수 있다면-지구의 대원(大圓)상을 정처없이 걷게 될 것이다.

차라리 별똥별 이론을 택하는 것이 낳을 뻔 했다…

 

 

 

 

“별 아래에서 태어나다”는 말하는 당나귀를 타고온 점장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별 아래서 태어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항상 궁금했을 것이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하도록 고용된 아랍 마술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내 손에 칼이 있엇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느니라 -민수기 (22장 29절,30절)

잠시후 발람은 수세기 후 기독교 소설가들에 의해서 비틀려져 문맥에서 벗어난 말을 내 뱉는다:

발람이 발탁에게 이르되…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민수기(24장12절- 17절)

 

 
 
 
 
 
 

(기독교는)이미 2세기에도 사기로 간주되었다:


“명백하게도 기독교도들은…신화를…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날조하는데 써 먹었다”
나에게는 기독교도들의 저술은 거짓말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 괴물같은 허구를 감출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잘 구성되지도 못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 셀수스 (Celsus) (On The True Doctrine, c 178 AD)

 

 

 

 

 

 

 

(졸음에 )꾸벅거리며 졸게되는 지방에서

제자들은 자고있고, 예수 홀로 신과 소통중인데 대체 누가 메모를 해두었나?

 

 

 

 

 

 

(유태교)랍비들은 예수를 알고있나?

초기의 랍비들의 문서에는 기독교 신에 대하여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

기독교가 유태교에 심각한 도전세력이 된 후에야 랍비들은 그들 자신들의 흑색선전 문서들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탈무드

Talmud.

 

 

 

 

 

 

바울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유스도라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레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 골로새서 4장 10절, 11절

– Colossians 4.10,11.

 

 

 

 

 

 

 

 

예수라는 사람이 (역사상)있기는 했었나? 물론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다수다!


유태인들의 영웅의 원형(原型)은 (모세의 후계자로 알려진) 여호수아(Joshua)다. 이 사람은 ‘눈’의 아들 예수아(Yeshua ben Nun)(물고기의 예수)로도 알려지고 있다. 예수란 이름은 히브리 말로는Yeshua 혹은 Yeshu로 쓰고 희랍말로는Iesous로 쓰는데 여기서 (‘Jesus’라는)영어철자가 나왔다. ‘예수’는 원래 (이름이 아닌) 직함이나 칭호를 가리키는 말로 ‘야웨가 구원하신다’에서 유래한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하는 데 그래서 아마도 거의 모든 유태인 저항단체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에게 다른 어떤 칭호보다 이 별명를 붙였을 것이다.

1세기의 유태 역사가인 요세프스는 적어도 19명의 예수(Yeshuas/Jesii)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 사람들이다. 요세프스의 ‘유대 고대사(Antiquities)’에서 언급된, 헤롯대왕의 치하로부터 유태 신전의 함락까지의 기간동아 재직하던 28명의 최고 성직자중에서 적어도4명이 예수란 이름을 가졌다. 이들을 열거하면: 필아비의 아들 예수(Jesus ben Phiabi), 쎅의 아들 예수(Jesus ben Sec), 담네우스의 아들 예수(Jesus ben Damneus) 그리고 가마리엘의 아들 예수(Jesus ben Gamaliel)들이다. 이 밖에도 바울은 자신의 경쟁자로 ‘또 다른 예수’에 대하여 설교하고 다니는 어느 마술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 후서 11장 4절). 아래에 이들 ‘식상할 정도로 많은 예수들’ 중 몇몇을 열거해 본다: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일들!

성경 이야기에는 빌라도가 유태인들에게 양자택일의 선택권을 주었을때 이 저주받을 민족은 선량한 예수대신 바라바를 선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잠간만! 오리겐(Origen)이 연구한 (성경)원문 (과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석방된 범죄자의 이름은 예수 바라바(Jesus Barabbas)다- 그리고 히브리 말로 “바 아바”(Bar Abba)는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빌라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를 같은 시간에 그의 감옥에 투옥하고 있었다고 믿어야 하는가?!!

아마도 진실은 한 사람의 범죄자로 처형된 이 사람이 모든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킬 것이라는 것일게다.
복음서 필자들은 이야기의 자세한 부분들을 얼버무리는 과정에서 라틴어나 희랍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람어인 바라바(Barabbas)의 구체적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라크의 아들 예수(Jesus ben Sirach): 이 예수는 구약의 계시록(Apocrypha )의 일부인 ‘시라크’란 책(전도서(Ecclesiasticus) 혹은 ‘시라크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로도 알려진)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서기 전 180년 희랍에서 저술활동을 한 이 사람은 유태의 지혜서와 호머 스타일의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묶어서 편집하였다.

판디라의 아들 예수(Jesus ben Pandira): 이 예수는 마카비(Maccabean)왕조의 가장 무자비한 철권 통치자였던 알렉산더 요내우스(Alexander Jannaeus, 106-79BC)치하에서 활동한 기인(奇人)이다. 사려깊지 못하게도 이 예수는 종말론적 사업에 투신하여 예언을 일삼고 사람들을 동요시켜서 왕의 노여움을 샀다. 결국 이 예수는 유월절 저녁에 나무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함으로서 자신의 자연수명도 살지 못한채 일찍 죽었다. 학자들은 이 예수를 엣센종파의 창립자로 추측한다.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Jesus ben Ananias): 서기 62년을 시작으로 이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재앙이 닥칠 도시” 를 주제로 닥쳐올 재양에 대한 주문을 끝없이 되뇌이는 소동을 일으켰다.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에언을 했다:

“동쪽에서 외치는 소리, 서쪽에서 외치는 소리, 네 바람으로부터의 소리,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적하는 소리, 신랑과 신부를 대적하는 소리,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적하는 소리”

-요세프스의 유대 전쟁사 6.3.


로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채찍형을 받은 후, 이 예수는 미친 잡범 정도로 취급되어 석방되었다. 그는 예루살렘 점령당시 로마의 투석무기 ‘카타펄트’로 던져진 돌에 맞아 죽었다.

사팟트의 아들 예수: 서기 68년 갈릴리 지방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폭동당시 이 예수는 타이베리아(Tiberias)(가난한 사람들과 어부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의 우두머리-요세프스의 ‘생애’ 12.66)의 반란군 대장이었다. 도시가 베스파시안(Vespasian)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 그는 갈릴리 바다의 연안에 있는 타리치아(Tarichea)의 북부로 도주하였다.

가말라의 아들 예수(Jesus ben Gamala) :서기 68년, 69년 경에 당시 유대땅을 휩쓸던 내전에서 이 예수는 “평화 당”의 우두머리 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벽에 서서 성을 포위하고 있는 이두민(Idumeans, 수자(Susa)의 아들들인 제임스와 죤이 이끄는 사람들)을 질책하였다. 이런 행동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두민들이 성벽을 깨고 (성을 점령한 후) 그는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시체는 개들과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에게 던져졌다.

테부츠의 아들 예수(Jesus ben Thebuth): 서기 69년 (예루살렘)시의 북부가 마지막으로 함락되었을 때 성직자였던 이 예수는 성전의 보물을 (점령군에게) 헌납함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 이 성전의 보물들 중에는 2개의 성 촛대와 순금제의 받침달린 잔, 그리고 성스러운 커텐과 최고 성직자가 입는 겉옷(장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리품들은 베스파시안(Vespasian)과 그의 아들 타이투스(Titus)의 개선식에서 눈에 띄게 전시되었다.

 

그렇다면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는 없었나?

물론 있었다. 스타다의 아들 예수(Jesus ben Stada)는 2세기 초 로마군에게 두통꺼리를 안겨준 말썽꾼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25마일 떨어진 리다(Lydda)라는 마을에서 로마군의 십자가 처형조의 손 아래에서 그의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로마군의 보복전술의 규모로 고려해 본다면- 예루살렘 포위의 절정기에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매일 500명이 넘는 포로들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는 정도이다- 예수라고 불리던 유대 영웅들은 문자 그대로 땅바닥을 겹겹이 덮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그중 아무도 이 위대한 보편적 역사의 주인공이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예수”들 중에 “나사렛 예수”가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인가?

여기서 문제는 성스러운 전기(傳記)를 뒷받침할 만한 것은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단한 이야기’는 연대의 오기와 상호모순, 그리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요셉과 그의 임신한 아내 마리아가 로마당국의 인구조사를 위하여 베틀레헴으로 떠났다는 그 당시는 유대땅과는 달리 (베틀레헴이 있는) 갈릴리 지방은 로마의 영토가 아니었고 ‘엄마’와 ‘아빠’는 그 여행을 떠날 이유가 하등 없었다는 점이다. 만일 갈릴리가 당시 (로마)황제의 영토였다 해도 역사에는 어거스터스(Augustus) 황제가(혹은 그 어떤 다른 황제도) 전국적 인구조사를 시행하라는 칙령을 내린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로마는 부동산 을 대상으로 세금을 징수했고 인구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은 2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Nazareth –
The Town that Theology Built

나사렛-
신학이 날조해 낸 마을

 

나사렛이란 마을은 구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한 갈릴리 지역(대 런던 지역

도의 크기) 구석 구석에서 전쟁을 치른 요세프스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 귀족이 된 그는 원래 유태 장군이었다: 역자 주)도 그의 저서 (유대 고대사: 역자주)에서 이 지역의 열 대여섯개의 다른 도시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나사렛에 대하여는 함구무언이다. 사실상 ‘예수가 활동’ 했다는 지역은 모두 너무 작은 마을들로 다만 그 지역의 촌부들이나 알 수 있는 그 유래가 매우 의심스러운 지명들이다. (반면에 현재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어 그 증거가 분명한 당시의 번성했던 이교도들의 도시는 예수의 여행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총체적 속임수에서 우리를 경각시켜야 할 것은 실질적으로 예수의 일생으로 꾸며진 이야기들의 거의 모두가 예수 보다 훨씬 이전 시대부터 전해오는 신비한 설화속의 주인공들의 생애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처녀 탄생이라는) 기적적인 탄생 이야기나, 어린 시절에 보여준 비범함이나, 기적을 행한다거나 혹은 병을 고치는 일 등등, 그 모든 표징들은 예수라는 성인이 (갈릴리 지역)을 거닐기 수세기 이전에 이미 다른 신들로부터 기인한 것들이다. 예수가 말한 것들로 되어있는 말씀들이나 지혜문들 또한 유대 경전이나, 신 풀라톤 학파의 철학, 혹은 스토아 학파나 견유학파들의 주석서들에서 따온 평상적인 것들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빌려왔나?

주기도문?- 원전이 아닌 유태인들의 호칭(呼稱)기도문의 재탕

중얼중얼rosary
중세 신부(중)들은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를 몇번 되뇌였는지를 세기 위하여 작은 자갈돌들이나 염주를 사용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라틴어를 몰랐으며 그들은 자신이 중얼거리는 것에 무슨 뜻이 있는지 몰랐다.
 


신약성서에는 기도문, 찬송가, 그리고 고백문들이 (뒤집어 쓸 만큼) 많다. 재미있게도 초대교회에서는 이 모든 기도문이나 찬송가들의 그 어떤 단어도 그 기원을 그들의 수퍼 영웅에 돌리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우리 아버지”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까??

분명한 것은 ‘주기도문’이 ‘주님’ 자신의 전통과 함께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첫 4세기동안에는 ‘주기도문’을 인용하는 일은 실상 매우 드믈었다. 물론 이것은 마태복음 6장이나 누가복음 11장에 나온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그 어떤 기독교 옹호론자들도 그 이름조차 언급한 일이 없다. 고고학에서도 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보드머 14(Bodmer XIV) 파피루스 와 안티누폴리스(Antinoöpolis)에서 발견된 또 다른 자료는 3세기 혹은 4세기를 가르킨다.

그러나 이 기도문의 한 형태는 기이하게도 디다체(Didache )라고 불리는 2세기 초기의 문서에서 발견된다. 이 ‘12사도의 가르침’으로도 알려진 소책자에서 우리는 낮익은상투어들을 볼 수 있다 (8장 2절)


너희는 위선자로서 기도하지 말며
다만 주님이 복음서에서 명하신대로 기도할지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빚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유혹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충분한 증거라고? 전혀 아니다! 우리는지금 3세기의 교회에서 (이미) 거부된 문서를 말하는 것이다. “디다체”의 정식 책제목에서 말하는 12사제란 살과 피를 가진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하는 야곱의 12아들들을 가리킨다.

이 ‘디다체’는 그 어떤 (기독교)성경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것이 유사(quasi) 유태경전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서 이전의 소책자에 따르면 ‘종말의 날에 신의 아들로 나타나서 징표를 보이고 기적을 행하는 자는 세상의 사기꾼이다’는 것이다. 즉 그 어느 성스러운 목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16장 3절 4절). 이 전설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디다체’에는 처녀탄생도 없고 목회활동도 없으며 십자가 처형도 없다. 물론 ‘예수’라는 이름이 4번 언급되고는 있지만 여기서 예수는 다만 주님, 즉 신으로부터 약간의 지식을 가져오는 전달자일 뿐이다.

더 오래된 유대 기도문서에는 기도문에 대한 더 초기의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 카디쉬(Kaddish) 의 한 변형판(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온다: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의 위대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왕국을 세우시되
신속하게 가까운 장래에 세우소서”

기도의 ‘아버지 (Abinu 혹은 Abba)’는 유태교의 예배식에는 흔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5세기와 6세기경Shemoneh 'Esreh 의 감사기도-18개의 축복-은 전통에 따르면 제2신전시대 즉 서기 전 6세기 부터 서기 70년 까지의 기간에 작성되었다고 한다. 하시디안(Hasidæan)집단에서 기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는 귀절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였다.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의 제일 중요한 부분은 정확히 카디쉬(Kaddish)에서와 같이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염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왕국의 출현이 아닌 돌아올 영웅에 대한 ‘내세적’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 (의 기도)는 메시아가 인간 예수안에 도착했다는 초기 기독교적 믿음을 전혀 표현하고 있지 않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주전 6세기와 3세기 사이에 작성된 잠언(30장 8절)에서 따 온 것이다.“네 이웃이 너를 해쳤더러도 그를 용서하라: 그러면 네가 진 죄를 용서받으리라”는 주전 2세기에 작성된 Ecclesiasticus (28장 2절)에서 따온 것이다. (Ecclesiasticus는 한역 성경의 전도서와는 다른 책이다: 역자 주)

마가복음에는 주기도문이 없다. 그러나 마가복음 12장 29절-30절에는 한 서기관이 예수에게 모든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신인(神人)은 매우 유태인 다운 대답을 한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주님은 한 분이시다” (마가복음 12장 29절) (이 부분은 한글 대역판 성경과는 조금 다르다: 역자 주)
  

이 소소한 이야기를 기초로 ‘누가’는 예수가 그의 제자에게 대답하는 장면을 꾸며냈다. 제자 중 어떤이가 예수가 기도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장면은 삼위일체설에 의하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청한다. 이에 대한 대답이 누가복음에 있는 짧은 형태의 주기도문이다.

‘마태’는 누가의 기도문을 손질하여 현재 알려져 있는 긴 형태의 기도문을 만들었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자면 이 신인(神人)의 기도문은 유태 고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우리 아버지’는 전혀 고유한 것도 아니며 최초의 것도, 혹은 신인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이것은 몇몇 유대교 기도문들에서 뽑아내어 간결하고도 정제된 형태로 작성된 문구에 불과하다.

 

 

 

 

 

 

 

 

 

 

기도문은 아니다

주기도문이 예수 자신의 생애기간 으로부터의 주제와 강조점에 대한 매우 초기의 요약이어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정제된 기도를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죤 크로산(John D. Crossan) “역사적 예수”p294

 

보이지 않는 친구

‘나사렛 예수’는 고대역사에서도 가장 기록이 풍부했던 시기, 즉 서기 1세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기독교 문헌 중 그 어느 곳에서도 이 하늘에서 강림한 기적을 일으켰던 사람에 대하여 한마디 조차 언급한 곳이 없다. (예수에 대한) 참고서적들은 -요세프스의 저작에 끼워넣은 저 악명높은 ‘삽입’을 포함하여(학자들은 이 삽입이 교회사를 쓴 유세비우스의 짓일 것으로 판단한다: 역자 주)- 모두 편파적인 기독교 문헌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요세프스 자신은, 많은 논의를 거쳤지만, 소위 십자가 처형이 일어났던 시기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끔찍한 진실은 기독교의 예수는 노략질한 사료(史料)로 부터 초대 교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날조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신화의 시작은 인간과 함께가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신이 된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된 신으로서 예수란 이름이 주어졌을 뿐이다. (실존 했던)진짜 예수들,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살고 죽어간 예수들은 (아마도) 그들 사후에 이야기들과 전설들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은 후에 기독교 서기관들에 의해서 차출되어 그들의 영웅을 위한 재료가 되었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살과 피, 혹은 반란자/랍비/혹은 기적을 행하는자 같은 것들과 함께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 발생의 기원은 신학 그 자체안에 있다.

 

게세마네 동산안의 CNN

신인(神人)의 마지막 기도를 듣고 기록한 사람이 누구였나 하는 것은 물론, 이 살아 있던 수퍼 영웅이 그의 복사(服事) (혹은 제자)들과 함께 지낸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였나에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증인이 될 만한 단 몇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마가복음 14장 36절-41절 (마태복음에는 이 장면이 거의 동일하게 나온다. 누가복음에는 축약된 형태가 나오고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삭제했다)


그러나 물론 성스러운 극장에서이니 - a fabula praetexta- 이러한 왔다 갔다하면서 하는 연기의 병행과 관중을 향한 수사학적인 선언들은 정확히 우리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예수의)수난 (이야기)중 많은 요소들이 역사적으로 앞뒤가 맞지않는다.

반란의 의심이 있는 자들에 대한 습관적인 검거와 재판과정 없이 처형을 단행하던 당시 로마의 치하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아?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는 그의 책 ‘On the embassy to Gaius, XXXVIII’에서 ‘재판이나 판결없이 지속적으로 살인을 자행하는’ 빌라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왜 로마당국은 유죄선고를 받은 중죄인의 시신을 곧바로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무덤에 장사지낼 수 있도록 허용했을까? 십자가 형은 정확히 일반대중들이 만일 그들 중 누구나 로마당국의 의지에 거스를 때 얼마나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이유로 고안된 것이다. 로마인들의 이런 기질은 아마도 퀸틸리안(Quintilian AD 35-95, Decl 274)의 글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죄인을 십자가형에 처할 때마다 가장 번화한 길거리를 택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두려움에 떨도록 말이다. 형벌은 죄과에 비레해서 정해지기 보다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한 세기 전 스팔타카스(Spartacus)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노예반란이 평정 된 후, 더 이상의 반란을 억제하기 위한 끔찍스러운 본보기로서, 6000명의 죄수들이 로마와 카푸아(Cappua)시 를 연결하는 아피아 경유로(Via Appia)상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죄수들의) 시체는 썩어 문드러 지도록 십자가 상에 내 버려 두거나 야생동물들이나 육식성 새들의 먹이감이 되도록 버려졌다.

물론 ‘(예수의)수난’이 다시 태어난 태양신을 대상으로 한 연출된 종교극이었다면 당연히 ‘희생된’ 주연배우는 신속히 무대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무대에 등장하여 ‘다시태어나는’ 연출을….

 

 

 

이 아이디어는 어디서 빌려왔을까?

asclepius
아셀레피우스
Asclepius

아셀레피우스(Asclepius): 많은 희랍인들은 이사람을(?) 한 때 사람으로 살다가 죽은 후 신으로 추앙된 존재로 믿는다. 그의 아버지는 아폴로 신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테살리(Thessaly)의 아름다운 처녀 코로니스(Coronis)란 인간이다. 그는 센타우루스(半人半馬의 신) 치론(Chiron)에 의해서 동굴안에서 양육되었고 그로부터 의료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아셀레피우스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 죽은 영혼에 대하여 하데스(Hades)신에게 속임수를 써서 그의 노여움을 샀다. 아셀레피우스가 모든 사람을 영생하도록 만들것이 걱정되었던 제우스신은 그를 번개로 살해한다. 아폴로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중재를 자청하고 제우스신을 설득하여 아셀레피우스를 의신(醫神)으로 만든다. 영원불멸의 신이 된 아셀레피우스는 신의 영역에서 병 든 사람들을 고칠수 있게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병의)치유를 염원하여 아셀레피우스 신전을 찾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목발을 짚고 아셀레피우스의 신전을 찾은 사람들이 행복한 춤을 추면서 신전을 떠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아셀레피우스)신전의 유명한 것들은 퍼가뭄(Pergamum), 에피다우루스(Epidaurus), 코스(Cos) 그리고 로마(Rome)에 있다. 치유 과정에 전적으로 참가하는 데는 신전 경내에서의 취침이 포함된다. -실상 이것이 최초의 병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총체적 치료에는 마사지, 목욕, 그리고 꿈 해몽 같은 특별서비스가 포함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정말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 이 희람신의 영험함을 증거한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아셀레피우스 숭배자들을 심히 악독하게 공격했는데 이는 물론 두 집단간에 얼마나 경쟁이 심했는가를 보여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셀레피우스 숭배자들이 예수가 행한 치유의 기적들은 이미 아셀레 피우스가 한 것들일 뿐 아니라 아셀레피우스가 (예수보다) 더 잘했다는 주장에 대해 초대기독교인들이 심한 당혹감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최고 성직자 죤, 신전에서 그의 동생 ‘예수’를 살해하다!

다른 곳도 아닌 거룩한 신전에서 또 다른 예수가 살해되었다. 페르샤의 아탁세르세스(Artaxerxes) 1세(circa 465-424 BC) 치하 기간의 일이다. 당시 최고 성직자였던 (예수의 형) 죤이 이 더러운 행위를 저질렀다. 이 일에 대해 요세프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최고 성직자 엘리아쉽(Eliashib)이 죽자 그의 아들 유다(Judas)가 아버지를 계승하여 최고 성직에 올랐. 다시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죤이 이 위엄있는 자리를 계승했다.

예수는 이 죤의 동생이었는데 그에게는 자신에게 최고 성직자 자리를 안겨주겠다고 약속한 바고세스(Bagoses)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후원을 믿고 자신만만한 예수는 성전에서 쬰과 타투었다. 여기서 형의 비위를 너무도 심하게 긁어 놓자, 화가 불같이 난 죤은 동생을 죽여버렸다.

최고 성직자로서 이처럼 엄청난 범죄행위를 저지른 죤에게는 이 사건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처럼 잔인하고 불경한 짓은 희랍인들은 물론 야만인들도 저지른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신은 처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레서 (그 죄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성전은 페르샤에 의해 더럽혀 졌다…. 이에 따라 바고세스는 이것을 구실삼아 예수의 살해에 대하여 유태인들을7년동안 벌했다.

-요세프스, 유대 고대사 11.7-

 

 



 

 

Some fifty articles are now available as a book. For your copy order:

 

 

 

 

Related articles
Home
Would they lie? (Copy and Glorify!)
 
The Apocryphal (and frequently revised) "Word of God"
 
"Brother James"Radical Jew Sanitized into Pious Christian Martyr
Now who could have been the brother of Jesus ben Damneus?
 
Jesus Christ – The Neighbour from Hell
 
Missionaries or Murderers? - The Christianising of Europe
 
1000 Years of Carnage & Barbarity in the name of Christ
MAJOR SECTIONS
Do you really think it all began with a sanctimonious Jewish wonder-worker, strolling about 1st century Palestine? Prepare to be enlightened.
  Jesus – The Imaginary Friend

Still holding to the idea that some sort of holy man lies behind the legend? Better check out...
Godman – Gestation of a Superhero

A closer look at the glib assertion that the Jesus story "got off the ground quickly and spread rapidly."
What DID the Early Christians Believe?


Many currents fed the Jesus myth, like streams and tributaries joining to form a major river.
Sourcing the legend – The Syncretic Heritage of Christianity


Much of the mythology of Christianity is a rehash of an older and even more transparent fabrication – Judaism.
Jew Story – The Way of the Rabbi


Human ingenuity and cunning is matched by mankind's equally monumental credulity and wishful thinking.
Christianity's Fabrication Factory


Church organisation, authority and membership preceded rather than followed the justifying doctrine. As the organisation and its needs changed so has the ‘Testament of God’ adapted accordingly.
Dogma – The Word in all its Savage Glory

From religious policeman to grandee of the church, from beast fighter in Ephesus to beheading in Rome, Paul's story has more holes than a swiss cheese.
 St Paul the Apostle – Dead in the water?


Orchestrated by ambitious Christian clerics, a cancer of superstition, fear and brutality was imposed across Europe.
Heart of Darkness – The Criminal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The Christian Heaven may have been a vain folly but the Christian Hell has been real enough.
Hell on Earth – A Brutal Superstition Spreads Across the World


Raised to the status of State religion the Christian Church reigned over the destruction of civilization. As the centuries passed religious barbarism grew ever more vicious.
Winter of the World – The Terrible Cost of "Christendom"

For two millennia Christianity's anti-sexual, puritanical doctrines have inflicted untold damage on the mental, emotional and physical lives of countless millions of people.
Those SEXUALLY hung-up Christians – Loved-up for Jesus


With a Jewish father (stern patriarch) and a Christian mother (obsession with guilt and heaven) it is not surprising that Islam grew up a bit of a tartar.
Islam's Desert Storm – 'Christendom' Reaps a Whirlwind

Heaven help us. The richest, most powerful nation in history has a psychotic infatuation with Jay-a-sus the Lawd!
The Christianizing of the Americas
 
 

 

 

 

 

Copyright © 2004 by Kenneth Humphreys.
Copying is freely permitted, provided credit is given to the author and no material herein is sold for profit.